교정의 역사
전 교정하면서 무지 궁금했거든요. 대체 요런걸 누가 개발했을까~ 하구요. 그래서 다른 사이트에서 찾아서 올려봅니다. ^^
히히- 좀 긴데 궁금하신 분 보세요~
치아교정의 역사
치아교정의 역사를 보면 입안에 넣고 빼는 교정장치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50년대 킹슬리(Norman Kingsley(1829~1913))란 사람이다. 그는 구순구개열환자(쉽게 말해 언청이환자)의 구강과 비강(코속)사이가 뚫려 음식이 콧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입천장 부위에 넣는 장치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입안에 넣고 빼는 플라스틱 교정장치의 효시이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는 것과 같은 용도로 교정장치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치과의사 앵글(Edward Hartley Angle(1855~1930))이다. 이러한 이유로 앵글을 현대 교정학의 아버지라고도 하는데, 그는 현재 사용하는 것과 같이 원리를 가진 치아 하나하나에 장치를 붙이고 철사를 그 장치에 묶는 형태의 교정장치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때는 치아에 장치를 붙이는 접착제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 어금니에 교정장치를 넣을 때 사용하는 반지 같은 형태의 교정장치를 앞니를 포함한 치아하나하나에 모두 부착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교정치료를 위해 강철로 된 반지를 앞니에도 모두 부착했다니, 아무리 치료를 위해서라지만, 오늘날의 교정치료에 견주어 보면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당시 교정치료를 받는 사람은 입을 벌렸을 때 모두 007영화에 등장하는 악당 조스처럼 시퍼런 쇠장치를 입에 주렁주렁 달고 다녔을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앵글은 교정치료를 위해서 치아를 뽑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치아배열상황에서도 치아를 뽑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가 치료한 환자의 경우 입이 앞으로 심하게 돌출된 사람이 많았다. 대신에 앵글은 이를 뽑지 않고 공간을 확보하고 치아를 배열하기 위해, 부족한 공간을 치조골(잇몸뼈)를 옆으로 벌려서 얻으려고 했다. 그래서 입천장을 지나가는 어금니부위의 치조골을 바깥쪽으로 벌리는 장치인 구개확장기(입천장확장기)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현재에도 사용되는 이장치는 치조골을 심하게 벌리면 동양인에서는 얼굴의 모양이 미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변형으로 인해 입천장이 심하게 좁은 환자에게 사용하고 있다. 다만 이 당시의 교정치료는 프랑스의 왕족이나 귀족, 또는 영국의 귀족자제들이 주로 받았으므로 동양인게서 보여지는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이처럼 당시의 초기 교정재료는 거의 강철소재였으므로. 치료를 받는 과정이 현재보다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후 Calvin Case 란 사람이 공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잇몸뼈를 억지로 넓히는 것 보다는 치아를 발치하는 것이 얼굴의 외적인 아름다움이나 배열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여, 이때부터 교정치료를 위해 이를 뽑는 것을 죄악시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사람은 강철 철사의 굵기를 많이 줄이고 현재 사용하는 구강내의 고무줄과 유사한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교정학의 발전은 교정재료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정치료용 철사도 현대기술의 발전으로 형상기억합금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게 되어 환자가 느끼는 고통은 적어지고, 치료기간도 단축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강철이나 귀금속 등의 제한적인 재료만을 사용하던 교정치료는 점차 세라믹이나 레진처럼 치아색과 같거나 투명한 재료를 사용하는 등의 발전을 해 오늘날에는 미관적으로도 과거에 비해 보다 폭넓은 환자 배려를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미관을 고려하는 교정치료 중에 현재 가장 새로운 기술로 알려진 설측교정은 치아 안쪽면에 장치를 붙여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도록 교정하는 방법이다. 1980년대 말 일본의 한 사립대학(쯔루미여자대학)의 치과에서 처음 개발된 이 기술은 이후 Hujita 란 이름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한 회사에서도 곧 개발하게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IT 산업과 마찬가지로 일단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속도 역시 가히 놀랄만큼 빠르게 도입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 도입된 치료법은 일단의 유행을 낳기도 한다. 설측교정은 몇가지 치료기법상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보이지않는다는 커다란 장점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치료기법 중 하나다. 아울러 손꼽을 수 있는 기법으로 투명교정을 들 수 있다. 이 치료기법은 치아에 고정된 장치를 장착하지 않고, 착탈이 가능한 투명한 치아틀을 이용해 치아를 이동시키는 기법이다. 그러나 이 투명치료법은 모든 환자에게 사용 가능한 기법은 아니고, 현재로서는 치아의 이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만 사용 가능하다.
우리나라에 치아교정학이 들어온 것은 1963년으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교정학교실이 처음 문을 열면서 부터이다. 때문에 교정학교실의 산파역할을 한 서울대치대의 서정훈 교수(필자의 은사이시기도 하다)는 한국 교정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 당시만 해도 치과대학의 교수들은 동경의대치과대학 등으로의 유학을 통해 새로운 교정학을 도입하고 지평을 넓혀 나갔다. 이후 서울대학교 교정학교실은 매년 졸업자 중에 한두명씩 수련의를 뽑아 교정전문의를 배출하였으며, 서울대학교 교정학교실을 통해 현재까지 100여명의 교정전문의가 배출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후 국내 11개 치과 대학에도 순차적으로 교정학 교실이 생기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도 교정치료가 널리 자리를 잡아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치과전문의 제도가 시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교정전문을 내거는 교정전문의에도 여러 그룹이 존재하는데, 우선 각 대학병원 교정과에서 정식수련을 받고 석, 박사를 취득한 전문의 그룹으로, 매년 각 학교마다 3~5명이 배출 되기 때문에 극소수의 인원이다. 이외에 외국에서 수련을 받거나 연수를 통해 교정학을 공부한 그룹이 있는데 정식으로 수련을 받은 그룹과 단기로 몇 개월 연수를 다녀온 경우도 있다. 그밖에 세미나나 개인적인 사사를 통해 교정치료를 배워 시술하는 경우도 있다. 끝으로 이번 기사를 통해 올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교정치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분이나 보호자 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이성호(분당의 엠디치과 교정과 원장으로 재직중)
히히- 좀 긴데 궁금하신 분 보세요~
치아교정의 역사
치아교정의 역사를 보면 입안에 넣고 빼는 교정장치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50년대 킹슬리(Norman Kingsley(1829~1913))란 사람이다. 그는 구순구개열환자(쉽게 말해 언청이환자)의 구강과 비강(코속)사이가 뚫려 음식이 콧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입천장 부위에 넣는 장치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입안에 넣고 빼는 플라스틱 교정장치의 효시이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는 것과 같은 용도로 교정장치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치과의사 앵글(Edward Hartley Angle(1855~1930))이다. 이러한 이유로 앵글을 현대 교정학의 아버지라고도 하는데, 그는 현재 사용하는 것과 같이 원리를 가진 치아 하나하나에 장치를 붙이고 철사를 그 장치에 묶는 형태의 교정장치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때는 치아에 장치를 붙이는 접착제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 어금니에 교정장치를 넣을 때 사용하는 반지 같은 형태의 교정장치를 앞니를 포함한 치아하나하나에 모두 부착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교정치료를 위해 강철로 된 반지를 앞니에도 모두 부착했다니, 아무리 치료를 위해서라지만, 오늘날의 교정치료에 견주어 보면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당시 교정치료를 받는 사람은 입을 벌렸을 때 모두 007영화에 등장하는 악당 조스처럼 시퍼런 쇠장치를 입에 주렁주렁 달고 다녔을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앵글은 교정치료를 위해서 치아를 뽑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치아배열상황에서도 치아를 뽑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가 치료한 환자의 경우 입이 앞으로 심하게 돌출된 사람이 많았다. 대신에 앵글은 이를 뽑지 않고 공간을 확보하고 치아를 배열하기 위해, 부족한 공간을 치조골(잇몸뼈)를 옆으로 벌려서 얻으려고 했다. 그래서 입천장을 지나가는 어금니부위의 치조골을 바깥쪽으로 벌리는 장치인 구개확장기(입천장확장기)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현재에도 사용되는 이장치는 치조골을 심하게 벌리면 동양인에서는 얼굴의 모양이 미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변형으로 인해 입천장이 심하게 좁은 환자에게 사용하고 있다. 다만 이 당시의 교정치료는 프랑스의 왕족이나 귀족, 또는 영국의 귀족자제들이 주로 받았으므로 동양인게서 보여지는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이처럼 당시의 초기 교정재료는 거의 강철소재였으므로. 치료를 받는 과정이 현재보다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후 Calvin Case 란 사람이 공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잇몸뼈를 억지로 넓히는 것 보다는 치아를 발치하는 것이 얼굴의 외적인 아름다움이나 배열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여, 이때부터 교정치료를 위해 이를 뽑는 것을 죄악시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사람은 강철 철사의 굵기를 많이 줄이고 현재 사용하는 구강내의 고무줄과 유사한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교정학의 발전은 교정재료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정치료용 철사도 현대기술의 발전으로 형상기억합금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게 되어 환자가 느끼는 고통은 적어지고, 치료기간도 단축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강철이나 귀금속 등의 제한적인 재료만을 사용하던 교정치료는 점차 세라믹이나 레진처럼 치아색과 같거나 투명한 재료를 사용하는 등의 발전을 해 오늘날에는 미관적으로도 과거에 비해 보다 폭넓은 환자 배려를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미관을 고려하는 교정치료 중에 현재 가장 새로운 기술로 알려진 설측교정은 치아 안쪽면에 장치를 붙여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도록 교정하는 방법이다. 1980년대 말 일본의 한 사립대학(쯔루미여자대학)의 치과에서 처음 개발된 이 기술은 이후 Hujita 란 이름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한 회사에서도 곧 개발하게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IT 산업과 마찬가지로 일단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속도 역시 가히 놀랄만큼 빠르게 도입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 도입된 치료법은 일단의 유행을 낳기도 한다. 설측교정은 몇가지 치료기법상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보이지않는다는 커다란 장점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치료기법 중 하나다. 아울러 손꼽을 수 있는 기법으로 투명교정을 들 수 있다. 이 치료기법은 치아에 고정된 장치를 장착하지 않고, 착탈이 가능한 투명한 치아틀을 이용해 치아를 이동시키는 기법이다. 그러나 이 투명치료법은 모든 환자에게 사용 가능한 기법은 아니고, 현재로서는 치아의 이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만 사용 가능하다.
우리나라에 치아교정학이 들어온 것은 1963년으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교정학교실이 처음 문을 열면서 부터이다. 때문에 교정학교실의 산파역할을 한 서울대치대의 서정훈 교수(필자의 은사이시기도 하다)는 한국 교정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 당시만 해도 치과대학의 교수들은 동경의대치과대학 등으로의 유학을 통해 새로운 교정학을 도입하고 지평을 넓혀 나갔다. 이후 서울대학교 교정학교실은 매년 졸업자 중에 한두명씩 수련의를 뽑아 교정전문의를 배출하였으며, 서울대학교 교정학교실을 통해 현재까지 100여명의 교정전문의가 배출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후 국내 11개 치과 대학에도 순차적으로 교정학 교실이 생기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도 교정치료가 널리 자리를 잡아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치과전문의 제도가 시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교정전문을 내거는 교정전문의에도 여러 그룹이 존재하는데, 우선 각 대학병원 교정과에서 정식수련을 받고 석, 박사를 취득한 전문의 그룹으로, 매년 각 학교마다 3~5명이 배출 되기 때문에 극소수의 인원이다. 이외에 외국에서 수련을 받거나 연수를 통해 교정학을 공부한 그룹이 있는데 정식으로 수련을 받은 그룹과 단기로 몇 개월 연수를 다녀온 경우도 있다. 그밖에 세미나나 개인적인 사사를 통해 교정치료를 배워 시술하는 경우도 있다. 끝으로 이번 기사를 통해 올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교정치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분이나 보호자 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이성호(분당의 엠디치과 교정과 원장으로 재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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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ie님이 개인적으로 맨 위에 올리신 글만 읽고 ㅋㅋ
아래는 그냥 쑥 내렸답니다-ㅅ-
너무 길어요!!!으컁컁/ㅁ/
다음에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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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초기엔 브라켓과 치아를 붙게하는 접착제가 없어서,
이들에 몽창 반지를 끼워서 와이어를 고정해 교정했구요,
007에 나오는 조스라는 악당같았을거래여.
그리고 발치를 죄악으로 생각해서,
비발치로 교정해서 돌출되는 사람도 많았다가,
나중엔 발치가 더 좋다고 이야기되서 발치로 교정하는게 발전했구요.
설측장치는 1980년 일본에의해 처음개발되었고,
그후미곡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구 하는데,
설측이 생긴지 얼마 안됬군요... ^^
우리나라에 치아교정학이 들어온건 1963년이고,
서울대 치과대학 교정학교실이 처음 문을 열면서 부터래욤.
그리고 교정전문의에도 여러그룹이 있는데,
대학병원 교정과에서 정식수련받고,
석박사를 ㅟ득한 전문의로 각학교마다 3~5명 배출된 소수인원이있고,
외국에서 수련이나 연수를 통해 교정학을 공부한 그룹이 있고,
단기간 몇개원 연수를 받거나,
세미나에서 개인적으로 교정치료를 배워시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이래서 아무대나 가면 안된다니까... ㅡ,.ㅡ
나의행운이 항상 당신과 함께하길...